[한겨례 21]에 실린 '세월호 시민 아카이브 네트워크'와 관련된 기사입니다. 김익한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이며,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회원 여러분께 일독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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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새겨야 할 문신 [2014.06.02 제1013호]
[이명수의 충분한 사람]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의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 “최종 목적지는 안산 공동체 최소한의 행복”

세월호 트라우마에 관해 두 차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치유자 정혜신은 남겨진 이들이 겪게 될 가장 큰 고통은 잊혀지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다짐하고 호소한다고 안 잊혀지는 건 아닐 것이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매번 자기 몸에 문신할 수도 없다.

기억의 유지가 치유의 시작

어떻게 해야 잊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화두에 골몰해 있다가 세월호 참사와 관계된 추모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가 전남 진도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네트워크의 컨트롤타워 격인 기록전문가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을 만났다. 우리가 진도로 내려가마 했더니 그가 서울로 왔다. 그렇게 길어질 일정인 줄 미처 몰랐다가 옷가지도 챙기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올라왔다고 했다. 수학여행 가서 입을 사흘치 옷가지만 챙겨 떠났다가 한 달 넘게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들은 이제 누구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살아 있는 이들이 수장되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도한 수천만 명의 시민들도 세월호 관련자다.

»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그때까지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는 문장과 관련된 증거 자료나 추론을 접할 때마다 몸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헬리콥터가 출동한 소리를 들었다. 안도했을 것이다. 창문으로 사람들이 구조되는 모습도 봤다.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어그러졌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얼마나 아득했을까. 그들은 의문사했다. 내가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른 채 세상과 이별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죽음의 이유를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은 그래서 필요하다.

동시에 무릎 꿇고 앉아 죽은 이들에게 들려줘야 한다. 부모·형제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세상은 얼마나 죄스러워하고 분노했는지, 그들의 남겨진 부모·형제를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마음 포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야 비로소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게 애도다. 추모기록을 보존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추모기록을 모두 모아서 ‘세월호 시민 기록저장소’를 만들 계획이라는 김익한 교수는 내게 기록전문가가 아니라 치유자처럼 느껴졌다.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가 뭔가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시민기록단입니다. 기록전문가들로 구성된 여러 주체들이 각자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시점에 네트워크로 묶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거죠.

-무슨 일을 하는데요.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 기자, 경찰, 현장지원 공무원 등을 상대로 구술 채록을 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촬영한 휴대전화 사진과 영상, 활동일지, 메모 등을 수집하거나 기증받고 있죠. 팽목항 천막에 쓰인 글을 비롯해 노란 리본, 메모지 등은 물론이고 기자들의 취재수첩도 포함됩니다. 세월호 관련 촛불시위라든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세월호 사고 기록도 수집 대상이고요.

기록 수집 의지 자체가 없는 국가

-그런 일들은 원래 국가에서 해야 하잖아요.

=원래는 그렇죠. 저희도 처음엔 기록 보존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해야겠다 하고 내려갔죠. 예를 들어 유리창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잖아요. 포스트잇 하나에 담긴 콘텐츠에 의미가 있으면 그냥 떼어도 되는데 이게 배열에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때는 사이즈에 맞는 판지에 그대로 옮겨서 질서를 유지하죠. 그 질서에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요. 근데 그런 방법을 공무원들이 잘 모르기도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보존할지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기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내려가 적절한 수집 활동을 한 뒤 상황이 종료되면 공공기관 문서에 잘 보관하게 하려고 했죠. 그런데 가보니까 상황이 그게 아닌 거예요. 기록이 굉장히 복잡하게 존재해서 생각보다 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할 뿐 아니라 국가는 관련 자료를 수집할 의지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원봉사단은 진도군의 기록 수집을 도와주는 일만 하고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는 그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거죠.

-기록전문가들 사이에선 진작부터 정부에 기록 보존을 맡기는 거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정부의 책임이 절반 이상인 참사의 기록을 어떻게 정부에 맡기나. 국정원에 국정원 개혁을 하라는 것과 똑같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세월호 기록보존소를 만드는 일은 시민의 몫이다. 우리 시민들이 하겠다. 정부에서 돈 댈 필요 없다. 이번에 내려와서 현장을 보고 그런 생각이 신념처럼 굳어졌습니다.

-세월호 관련 기록은 두 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정확한 사실 기록이 하나일 테고, 또 하나는 추모 기록이겠죠. 앞의 기록이 세월호 기록의 뼈와 살이라면 후자의 기록은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핏줄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에는 진상조사와 관련된 자료는 담기지 않을 거예요. 저희는 ‘세월호 시민 기록저장소’라고 이미 이름을 제안한 상태인데요, 거기엔 세월호의 아름다운 진실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는 별개로 세월호와 관련된 정부 쪽의 기록, 말하자면 죄악의 기록이겠죠. 그건 온전하게 남겨둬야 해요. 거기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릴라이어빌리티(Reliability), 기록학에선 ‘신뢰성’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한 행동대로 기록하고 그것을 변경하지 말고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심판은 우리가 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미 파기하고 위조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요. 시민과 전문가와 정부 일부가 합쳐진 진상 규명 기구를 통해 공공기록을 대상으로 진상을 밝혀야 해요.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에서 수집하는 기록의 궁극적 목표랄까요.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제가 진도에 간 첫날 실종자 가족들이 너무 외로워하고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아, 이분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결국엔 잊혀지는 것이란 걸 제가 현장에서 확실하게 알게 된 거죠. 적극적으로 기록해서 이 기억을 시민들이 공유하게 하고 그 기록을 전시해서 잊혀지지 않게 해야 하죠. 그걸 하지 않으면 이분들께 죄를 갚을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적 기억이 될 사람들의 아름다움

그와 내가 동시에 목이 메었다. 그 죄책감이 어떤 건지 동창생들만 알고 있는 고교 때 담임선생님 별명처럼 금방 이해됐다. 초면의 50대 중반 사내들이 민망해하지 않고 함께 울었다.

-그게 ‘사회적 기억’인 거죠.

=그렇죠. 절망과 슬픔의 기록이지만 서로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개선책을 찾아나가면 그게 사회적 기억이 되죠. 사회적 기억은 객관적 기록과 다양한 개인의 경험치가 결합해서 형성된다고 볼 수 있죠. 우리도 세월호 과정에서 경험했던 것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가겠죠. 그게 무엇인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세월호의 사회적 기억이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수집했는데 특이하게도 실종자 가족들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미안해서… 가족들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함께 울컥했다. 그런 게 본질이겠구나. 그런 배려가 기록돼야 하겠구나. 휴지를 들고 한참 멈춰 있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증언적 구술을 많이 해준 진도 출신의 자원봉사자 한 분이 어민들 얘기를 해주셨어요. 유실되는 주검이 있을까봐 배를 타고 수색을 나가느라 경제적 활동을 못하니까 손실이 엄청날 거잖아요. 요즘 진도 군민들도 그럴 거고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함께 생계 걱정을 하다가 그런 얘기를 하는 자신들을 너무 부끄러워한다는 거예요. 물론 예외적 경우라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게 실상이에요. 그걸 기록해야죠. 제가 코를 좀 세게 곱니다. 그래서 체육관 2층에서 자면 방해될까봐 밖에 있는 텐트에서 잤어요. 담요를 세 겹인가 덮고 잤는데도 엄청 춥더라고요. 아침에 훌쭉해서 밥 먹으러 가니까 자원봉사자 한 분이 벌써 이러면 어떻게 견디겠느냐 걱정해주시더라고요. 그날 밤에 다시 텐트에서 자려고 하는데 체육관 2층에 매트리스를 깔아서 잠자리를 마련해놓으셨더라고요. 그분이 자원봉사자 중에 젤 바쁘세요. 챙겨야 할 일도 많고. 그런데 겨우 하루 된 제게까지 그렇게 배려를 하는 거죠. 저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겠죠. 그렇지만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경험인 거예요. 세월호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예감했습니다.

‘마음’이 아카이빙 핵심

그는 청동거울을 깨끗이 닦고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사람처럼 개인적 영역에서뿐 아니라 자신의 전공 분야에 관해서도 참회의 고백을 한참 했다. 뜬금없지 않았다. 그 맘을 왜 모르나.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세월호 기록이 다른 현장의 기록과 차이가 있나요.

=있습니다.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면요, 첫 번째는 기록화 작업에서 가장 중심부에 있는 피해자 가족을 빼놓고 간다는 거죠. 지금은 그분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죄스러우니까요. 진액을 빼놓은 기록화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영역의 아카이빙과는 다른 경험이에요. 두 번째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기록화 대상의 영역이 너무 넓어요. 다른 사건에 비해 기록해야 할 주체의 종류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이번엔 사람들의 마음도 그 대상이에요. 제 입장에서도 그 정도 규모의 기록화 대상을 접하는 건 처음이에요. 마지막으로 기존에는 주로 종이, 문서 이런 것이 기록화 대상이었는데 이번엔 종이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을 모을 수밖에 없었어요. 구술이 중요한 자료일 것 같아요. 단계적으로 그 모든 걸 기록해야 세월호의 제대로 된 진실이 나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트라우마라는 사실을 진도에 내려와서 더더욱 실감하고 있어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행차한 8일간의 축제를 정밀하게 묘사한 8권의 의궤(儀軌)는 기록문화의 절정이라 평가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보이는 대로 백성을 왕보다 크게 그리기도 한 원근법 등은 획기적이었다죠. 듣다보니 세월호 아카이브도 우리나라의 기록문화에 한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록 관리계에서도 세월호를 계기로 방법의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월호 기록의 핵심은 참사 자체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참사의 과정과 결과에 관련된 인간들의 마음이 세월호 아카이빙의 핵심이죠. 또 하나는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구조에 대한 아카이빙일 테고요. 기존에 썼던 평면적인 방법으로는 세월호 속에서 발견한 여러 모습들을 제대로 그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이번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 영역도 1차적으론 경기도 안산 공동체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행복감을 느낄 때까지 아카이브라는 기회를 가지고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카이브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최종 목적지는 안산 공동체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행복이라고 봐요.

정조 시대의 원근법처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 세월호 이전과 전혀 다른, 더 깊고 맑은 기록의 세계가 펼쳐지길 바랐다. 그 세계가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었다.

-세월호 아카이브와 관련해 향후 어떤 계획이 있나요.

=시민의 힘으로 두 가지를 하고 싶어요. 팽목항 주차장 뒤쪽에 있는 구릉을 조성해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그 위에 올려놓고 예술적 작업을 해서 아이들을 기리는 상징물을 만들면 좋겠어요. 그래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든 팽목항을 지날 때는 반드시 그 상징물 앞에서 선장이 세 번씩 경적을 울리게 하는 거죠. 그다음에는 안산에 이른 시일 내에 사랑으로 가득 찬 세월호 시민 기록저장소를 만드는 겁니다. 팽목항 상징물을 일단 만든 뒤엔 기본적인 유지·보수 차원일 테지만, 안산 아카이브는 시민들과 함께 계속 기록을 업데이트하면서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아카이브가 완성되는 시점이 5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기록저장소가 될 것

그의 소망이 이뤄지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팽목항을 지나는, 어느 선하고 책임감 있는 선장이 울리는 세 번의 경적을 얼핏 들은 듯도 해서 목울대가 후끈했다. 그 소리가 잊지 말라는 세 번의 나지막한 외침인 줄 아무도 잊지 않을 것이다.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잊나. 하나하나가 이런 기억일 텐데.

“어머니 발가락 냄새/ 아버지 발꼬락 냄새/ 당신, 발바닥에 어린 내 발바닥 맞춰보며 웃던 일 있었는가 몰라도// 풀밭 지나 너덜 지나/ 신발을 베고 누우면/ 뒷목에 차오르는/ 먼저 간 신발들의/ 낮은 말소리” -유종인 ‘신발베개’

세월호 시민 기록저장소엔 그런 기억이 차고 넘칠 것이다. 거대한 하나의 참사가 아니라 모두 ‘신발베개’ 같았을 세월호 사람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면 안 잊는다. 살다보면, 잊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겐 가장 큰 위로이고 용기이고 희망인 동시에 정의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심리기획자 이명수, 녹취 나해리  



Posted by 한국기록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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