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야단법석] 기록관리와 여성(1) - 힘과 능력의 관계를 생각하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3. 26. 10:59

'기록인칼럼' 3월의 지정주제는 ‘기록관리와 여성’입니다.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기록관리와
여성의 관계, 기록관리계의 여초현상 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록관리와 여성] - 힘과 능력의 관계를 생각하다

2012년 3월 15일 취우(醉雨)

내가 젊었을 때(음...20세기 말, 나의 20대를 말함), 그 때 나는 상당히 전투적이었다. 하나는 군부독재 정권시절이다 보니 교실에서 수업만 받고 있을 수는 없었던 탓에, 다른 하나는 여성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의 억압을 타파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1989년 1월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나는 180명 규모의 연구 조직에서 달랑 4명뿐인 여자 연구원 중 하나였다. 그 해 신입연구원 중엔 유일한 여성이었다. 입사 후 곧 인사이동이 있었고 직원들은 각자의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벽걸이형 서랍장을 떼어내 어깨에 걸친 채 두어 층 계단을 걸어 올라 새로운 내 자리로 옮겼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연구원들은 나의 힘찬, 아니 힘센 모습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놀랐다(서랍장이 꽤 크고 무거웠다는...). 그 때부터 나는 직장에서 독특한 중성적 이미지로 자리를 굳혀갔다. 여자인데 여자같지 않은, 뭐 그렇고 그런 존재....
나는 그게 최선의 답 중 하나라 여겼다. 당시 남자 연구원 월급의 90% 월급을 받고 있던 여자 연구원으로서 나는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힘쓰는 일에서도 남자 연구원들에게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려 했다. 90%를 받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불평등한 일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 마침내 남녀 동등 임금이 성취되었을 때, 그게 나처럼 모든 여자 연구원들이 남성처럼 힘을 쓴 덕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사회 정치적 민주화의 과실이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21세기 초, 기록관리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깜짝 놀랐다. 여성 천지의 세상! 교수님들은 남성의 수가 훨씬 우세하지만 대학원과 교육원의 학생들은 여성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분위기나 프로젝트팀의 분위기도 왠지 보송보송,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크게 말했다. “기록관리에는 힘이 필요하다! 무거운 기록물 박스를 거뜬히 나를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기록관리자다!”라고. 그래서, 남자가 필요하다고....아니, 적어도 남자가 유리하다고....맞는 말일까? (사실 나도 요 며칠 잠재 기증자 댁의 기록물 정리 작업을 하면서 ‘힘센 작업자’가 절실하긴 했다. 끄응~) 
여기서, 우리의 사회가 지식사회로 고도화될수록 남녀 간 힘의 ‘차이’에 기반한 ‘차별’이 점차 무력해지고 있으며, 기록관리 분야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하자. 특히 기록연구사들이 수행하는 기록관리란 근본적으로 지적 노동이며 따라서 관리자의 성별에 따라 어떠한 차별도 이루어질 근거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지금의 여성 기록연구사들은 20여 년 전의 나처럼 상자를 들기 위해 힘을 기르기 보다, 적시에 힘센 작업자를 고용하기 위해 기획력과 집행력을 발휘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20세기를 지나 바야흐로 21세기인 것이다.
그간 공공기관에 배치된 기록연구사 중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70%에 달한다. 혹시 이들이 일하는 동안 힘을 써야 했을 순간에 크고 작은 차별적 시선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잠시 상상해본다. 비록 우스개 소리라 해도 ‘힘이 센 기록관리자’는 ‘노래 잘 부르는 기록관리자’나 ‘술 잘 마시는 기록관리자’처럼 ‘일 잘하는 기록관리자’가 되기 위한 작은 조절변수(Moderating Variable)는 될 수 있어도 독립 원인변수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크게 의심치는 않으나 실제 기록관리 현장에서 기록연구사들이 혹시 성적 차별의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지 세심히 살펴볼 일이다. 여성 차별만이 아니라 남성의 역차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