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아키비스트의 눈] 나의 기록화에 대한 반성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10. 16:50

나의 기록화에 대한 반성문



세상초보
 
나는 나를 ‘기록화’하지 못한다. 학부시절 작성했던 여러 가지 문건(?)들과 자료집들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대학원시절 모았던 각종 자료와 과제들도 이미 어떤 사연을 담은 다른 종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결혼식과 신혼여행 사진도 스튜디오에서 예쁘게 만들어준 것 외에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봉지’에 담겨 있다. 우리아이 첫돌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언젠가는 컴퓨터 파일에 담아뒀다가 모두 포맷되기도 하였다. 우리아이의 어린시절이 통째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둘째가 뱃속에 있는 지금도 산모수첩만 간신히 들고 다니고 초음파사진은 통장주머니에 고이 모아두기만 했다.

얼마 전 이사를 핑계로 가지고 있던 나의 기록들을 정리했다. 버려야만 또 다시 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구잡이로 버렸다. 남편이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의 ‘산뜻한 생활’을 꿈꾸며 이 정도는 버려도 되겠지 하는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묵은 때 청소하듯이 싹쓸이 해 버렸다. 결국 일이 터졌다.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책과 서류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아이 몇 안 되는 앨범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남편에게 갖은 핀잔을 다 들어가며 찾아봤지만 못 찾고 또다시 반성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 앨범은 친정에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책과 서류를 결국 못 찾았다. 아마도 버려졌을 것이다.

왜 나는 나의 기록을 평가·폐기하지 못할까. 평가없이 무단폐기만 이사할 때마다 한다. 그리고 매번 후회한다. 기록전문가랍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록화하십시오. 적법한 평가를 통하여 폐기하십시오’ 라고 외쳐대면서 말이다. 이러다가는 우리아이들의 기록도 나로 인하여 무단폐기될 판이다. 지금까지는 나의 덜렁거리는 성격 탓으로 돌렸지만 몇 번의 중대과실을 겪으면서 나와 내 가족의 기록화에 대해 고민해본다. 당장에 둘째 초음파 사진부터 산모수첩에 붙이고 봉지에 싸여있는 사진부터 앨범에 끼워야겠다. 이제부터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평가·폐기를 하는 ‘우리집의 기록전문가’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