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논란

미르


또 “기록”이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8년 ‘대통령기록물 유출 논란’을 시작으로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의 불법 폐기’, ‘4대강 담합 문건 유출’ 등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의 폐기와 목록 삭제를 지시했다고 한다. ‘지정기록물’ 제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대통령기록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연이은 논란과 사건 덕분에 국민들은 ‘기록관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기록학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은 전자기록의 진본·사본 개념, 기록의 폐기와 이관, 열람권한 등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기록관리 혁신’을 외치며 철저하게 기록하고 관리하고 남기고자 했던 시기에도 언론과 국민에게 이 정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록’과 ‘기록관리’를 이슈로 만들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만 같다.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기록과 기록관리에 대해 환기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기록관리 업무를 하는 것은, 나를 통해 남겨지고 관리되고 이용되는 기록이 국민의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공적 기관은, 그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를 갖는다. 그 의무는 철저한 기록 생산과 투명한 공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한 조직보다는 국민을 위해 기록관리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기록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는 내 믿음이 너무나 순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언제든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목적에 의해서 진실과는 다르게 기록이, 또는 기록관리가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전문가답게 행동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나에게 미칠 피해가 두려워 그저 숨죽인 채 수수방관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강하게 부정해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지울 수가 없다. 일상적으로 생존, 권리, 자유가 위협받는 ‘超상식’ 시대에 전문가로서의 신념이나 자존심을 얘기하는 것이 사치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 거론되는 대통령기록법 개악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기록을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기록이 아예 남겨지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번 논란으로, 기록은 역시 남기지 않을수록 편하다는 교훈(?)을 모두에게 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번 정부 4년간의 대통령실 생산 기록이 54만 건이라고 한다. 참여정부 5년간의 대통령비서실 생산 기록의 양인 204만 건의 1/4을 약간 넘는 정도이다. 내년 2월, 얼마만큼의 대통령기록이 이관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Kay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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