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문화 속 의도와 결과의 아이러니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2013. 7. 12. 16:38

 





2003, 미국 법원은 비만자들이 맥도날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담배소송이후에 "기업과 사회가 개인의 건강과 삶에 대해서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소송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비만자들은 충실하게 맥도날드의 제품을 구입해왔는데 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비만으로 고통 받아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비만에 맥도날드가 한몫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식습관과 생활태도로 인해 생긴 비만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거야?" 싶지만,

(미국 법원도 이런 이유로 원고들의 요구를 기각했다.)

사실, 비만이라는 사회문제는 또 다른 사회문제인 "빈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연결 지점에는 맥도날드를 먹여 살리고 있는 마케팅&세일즈 전술, "해피밀(Happy Meal)"이 있다.

 

                        <고갱님! 해피밀 드시면 이런 장난감이 공짜로 생깁니돠>

 

빈곤계층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줄만한 여력이 없다.

밥 한 끼와 장난감을 동시에 제공해 주는 값싼 해피밀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품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떼우는 식습관과 함께 비만이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대물림된다.

가난한 부모가 자식에게 식사와 장난감을 제공해주려 한 의도 속에 비만에 대한 고려는 희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하나의 현상은 다른 현상과 꼬리물기를 한다.

 겉은 표면적인 현상일 수 있다.

단지, 햄버거와 장난감이다. 하지만 이는 곧 빈곤과 비만 문제로 이어지고,

나아가 법정 싸움으로 번지면서 기업활동과 사회문제와의 관계, 기업활동과 자유의지를 지닌 개인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발전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현상"이 있다.

이들 현상 간에는 어느 정도의 고유영역이 있어서 다른 영역과 구분된다.

하지만 이때, 하나의 현상을 다른 것과 구분짓는 "(Line)" "실선"이 아니라 "점선"이다.

그 점선 사이의 빈칸으로 현상과 사회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Dr. Dre는 마리화나가 합법적으로 유통되면 음성적인 마약의 부작용이 줄어들 거라 주장한다.>

  


Dr. Dre는 앨범의 겉표지로 마리화나 잎을 사용한 바 있다.

그의 앨범 표지를 보고 "우왕, 간지드레!ㅎㅂㅎ!!"할 수도 있겠지만,

Dr. Dre가 마리화나의 합법적 유통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겉표지에서 포착할 수 있는 현상의 의미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현상 간, 문화 간 상호작용의 파문은 4차원으로 이어진다.

앞뒤좌우위아래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 넘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때, 이러한 영향력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미디어 컨텐츠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발생된 고구려문화 붐은 역사와 외교, 정치문제를 넘어 고구려문화에 대한 소비로 이어졌다. 이때 드라마 "주몽"을 비롯한 미디어 컨텐츠들은 이러한 고구려 붐의 선봉에서 문화적 촉매 역할을 했다. 2000년 전의 고구려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 혹은 "자긍심과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체는 생각이나 했을까, "한국"이라는 땅에서 자기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 입은 젊은이들을.>

 

사회의현상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밥말리나 체게바라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에 대해

"자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자유"보다  "간지나니까" 그런 티셔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문화를 만들고, 유통시키려는 사람, 그러한 문화적 결과를 평가하려는 사람은 세상의 현상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해야만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기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남기고 이용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우리 자신들도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 수 년 간 우리는 도처에서 현상 속의 의도와 결과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마주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는가. 그러한 법률을 제정한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법률과 미디어와 역사인식과 문화가 범벅되어 빚어 낸 참담한 결과들을 보아 왔다.

 

꿀벌은 침을 쏘고나면 죽는데, 그렇다고 꿀벌이 죽을 각오로 침을 쏘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공격에 놀라 침을 쏘지만 꼬리 깊숙하게 박혀 있던 침과 함께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살고자 쏜 침이 꿀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때로, 의도와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을 선택한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곳.

불분명한 인과관계 속에서 분명한 판단을 강요받고 있는 곳.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