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아키비스트의 눈] 공공기록관리 대전환의 전제, '지금, 여기, 현장으로부터'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2022. 1. 12. 11:18

회원이 만들어가는 칼럼 '아키비스트의 눈' 입니다.

'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2-01)은 이원필(필명)님께서 보내주신 [ 공공기록관리 대전환의 전제, '지금, 여기, 현장으로부터' ]입니다. 2021년 한국기록학회 동계학술대회, 김익한의 발표 "국가기록관리, 대통령 기록관리의 대전환"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 '아키비스트의 눈'은 기록관리와 관련된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투고를 원하시는 회원님들께서는 karma@archivists.or.kr로 메일 주시거나 아래 바로가기(구글 DOCS)를 이용하셔서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실명이 아닌 필명(예명)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온라인 작성 바로가기>

 

 

* 본 칼럼은 한국기록전문가협회의 공식의견과 무관함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2022-01 공공기록관리 대전환의 전제, &lsquo;지금, 여기, 현장으로부터&rsquo;.pdf
0.11MB

 

 

공공기록관리 대전환의 전제, '지금, 여기, 현장으로부터'

 

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2-01)

 

공공기록관리 대전환의 전제, '지금, 여기, 현장으로부터'

2022.1.11.

이원필(필명)

 

 

2021년 한국기록학회 동계학술대회 , 김익한의 발표 "국가기록관리, 대통령 기록관리의 대전환"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생각

 

작년 12월 17일 “국가기록관리 정책의 대전환”을 주제로 ‘한국기록학회 2021 동계학술대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국가기록관리, 대통령기록관리, 아카이브 네트워크, 학문과 실천의 문제 등 기록관리 주요 분야의 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특히 “국가기록관리, 대통령 기록관리의 대전환”을 발표한 김익한(이하 발표자)의 발표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등 정치와 사회적 환경 변화를 앞둔 시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발표자는 공공기록관리의 사회적 역할(업무지식 전달, 투명성 제고, 지식자산의 사회화, 사실의 전승 등)을 주장했다. 더해서 ‘아카이브 시민권’의 확대, 신기술로의 전환 등 환경의 변화도 언급했다. 안으로부터 제기되는 성찰과 함께 밖으로부터의 요구 모두 공공기록관리의 ‘대전환’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발표자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 지점에서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 ‘공공 기록관의 전면적 아카이브화’의 세부실천방안으로 제시된 ‘부존재공익침해심판제도’는 가능한가.

‘부존재공익침해심판제도’는 낯선 주장은 아니다. 국가기록원의 혁신TF에서도 이것을 혁신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고, 실천을 위한 검토도 따랐다. ‘공공기관이 생산해야할 기록을 제대로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이 피해를 입을 경우 기록부존재의 적법성을 심사하여 조치를 취하는 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관리와 보존에 앞서 생산까지를 기록관리의 전과정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만족할 만한 생산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이 제도에는 우리의 이상과 함께 보다 완전한 제도로서의 상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주장을 그대로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먼저 이 제도가 선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포괄적 기록평가 정책을 통한 생산할 기록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모든 기록생산 프로세스에 적용하기 어렵다. 인허가, 심의 등 엄격한 업무절차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일부 가능하다. 하지만 정책결정 등의 업무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다. 과정은 잘 기록되지 않고, 지식은 암묵적으로 오가며, 일이 절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기록된 기록도 존재를 확인하지 못할 수 있다. 피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입증할 수 없다면, 원고는 엄격한 인과관계의 구성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측면에서 ‘부존재공익침해심판제도’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록을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받는 처벌이 업무 그 자체의 잘못으로 인한 처벌보다 강력해야 한다. 유사한 사례로 인용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의 경우도, 소송 당사자 간에 공개해야 할 자료를 공개하지 못한 경우 본 재판에서 큰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유지된다. 단순히 기록을 잘 관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관련해서 미국에서 벌어진 한국기업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간 소송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두 기업은 특허와 관련하여 미국 ITC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소를 제기하였는데 2020년 2월14일 ITC가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렸다. ITC는 SK이노베이션 측의 증거인멸을 판결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혐의를 입증할 관련 문서를 SK이노베이션 측이 증거보존 의무 기간(증거 개시 과정)에 파기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부존재공익침해심판제도’는 공공기록이 생산되는 실무 환경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기록 생산을 강제하기 위한 강제력의 규모와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기록전문영역이 현장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현실적인가를 따져보아야 하다. 현실은 납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 3부에서 독립한 ‘대통령기록관리 독립위원회’는 가능한가

발표자는 3부 독립 위원회로서 ‘대통령기록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만큼 3부(입법, 행정, 사법)에서 분리된 통제 기능 작동’이 필요하다고 근거를 들었다. 위원회는 대통령기록생산기관 기록관 및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통제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대통령기록관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능을 하는 위원회는 3부에서 독립해야 할까?

먼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기에 그 통제 수단으로서 독립 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대통령기록관리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한국의 대통령은 임기 중 많은 권한을 갖고 있지만, 권한이 큰 만큼 임기가 종료되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권력의 속성이다. 임기 중 남긴 기록은 정치적 공격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것인가?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제도다.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에 대한 무분별한 열람을 막고, 기록을 보호하는 대통령기록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며, 대통령기록관을 분리하여 독립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모두 남겨진 기록이 정치적 논란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한 3부 독립 위원회는 대통령 기록물 생산의 다른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둘째, 현실적으로 3부에서 독립한 위원회는 운영이 쉽지 않다. 한국에서 독립 행정조직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뿐이다. ‘인권위’와 ‘공수처’는 각각 인권의 증진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라는 독립적이고 전문적 업무 수행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두 개 기관도 종종(어쩌면 자주) 현실 권력과 관료제의 견제를 받곤 한다. 발표자 스스로도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위원회 운영의 현실은 구성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다.

셋째, 3부 독립 위원회와 개별대통령기록관은 어떤 관계인가. 대통령기록관리 전문가들은 개별대통령기록관의 설립과 운영을 주장한다. 개별대통령기록관은 해당 대통령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통령기록관장이 기록물을 보호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을 한다. 만약 개별대통령기록관과 대통령기록관이 3부 독립 위원회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다면 개별대통령기록관의 강력한 전제인 ‘전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관장의 존재’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구조와 관계의 충돌이 생긴다. 설명이 필요하다.

 

 

▶ 대통령 기록관리의 사각지대 해소는 어떻게 가능한가

발표자는 임기 중 대통령기록을 관리하는 ‘대통령기록관리센터’ 설치를 통해 현재 기록화되고 있지 못하는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 대통령 실장 및 수석 비서관이 참여하는 고위급 당정 협의회, 여당과 정부 실무 정책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정책 조정 회의의 기록화를 강제’하자고 제안한다. 국가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당정협의회 기록이 철저히 생산되고 관리된다면 향후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역사연구 등에 유용할 것이라는 점에 이의가 없다. 하지만 고도의 정치 영역에 대한 제도 신설을 통한 기록화의 강제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대통령기록관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대통령 기록의 생산과 이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쉽고, 이를 대통령기록 전문가-전문기관이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기록’이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 기록이 문제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와 기구의 설치가 만능이 되기에 현실은 복잡하다.

정치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과 관련된 기록의 생산, 관리는 행정기관의 그것과는 다르다. 목적도 생산자도 프로세스도 무엇보다 환경이 다르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정치와 행정을 넘나들며, 현실의 층위와 아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은 안심하고 기록을 남기고, 남긴 기록은 철저히 보호되며, 사회와 사람들은 이것을 문화로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와 문화는 서로를 격려하며 발전한다.

 

 

▶ ‘즉시 지정제도 운영’은 가능한가

발표자는 ‘임기 말 예외적 지정 행위를 통제’하고 ‘즉시 지정제도를 운영’하자고 주장했다. 18대 대통령 탄핵,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에 대한 정보공개 등 다양한 현안과 결부된 지정기록물의 지정시기 문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시된 ‘지정기록을 생산 즉시 지정’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지정제도 전체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지정기록제도는 기록물 ‘한 건, 한 건’의 내용을 검토하여 지정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광범위하게 기록화하기 위한 제도다. 때문에 기록물 생산자가 기록의 생산과 함께 지정여부를 즉시 결정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 지정 제도는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 제도는 대통령 중심의 특별한 권력 제도와 환경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록을 '지정'하는 행위는 임기 종료 후 대통령을 상정하고 있기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 전, 즉 임기 종료 즈음의 정치적 환경이 고려 요소가 된다.

프로세스적상으로도 즉시 지정은 쉽지 않다.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는 권한은 오직 대통령(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만이 갖고 있다. 위임 전결로 처리할 수 없다. 만약 지정기록물을 즉시 지정한다면 매번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지정기록물은 매우 철저한 보호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정된 기록물에 대한 관리도 쉽지 않다. 매번 지정된 기록물을 이관해야 하는지, 지정된 기록물을 임기중 더 이상 업무 참조 할 수 없는지 등에 대한 문제도 생긴다.

지정기록의 지정시기 문제는 대통령기록물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정기록 제도에서 핵심 사안이라고 볼 수 없는 지정기록의 오지정, 과다 지정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즉시 지정’을 주장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지금' 기록관의 아카이브 지향은 유리한가

기록관에 아카이브 기능을 권고하는 것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다만 현장의 인적 조건, 역량, 기록관의 정체성, 처리과-기록관-아카이브의 3단계 모델의 재검토 등 줄곧 논의되고 있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 과제를 차근차근 검토해야 한다. 기록관 기능과 지향은 선언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기록관은 대부분의 기록전문직이 일하는 현장이지만, 정확히는 조직으로의 '실체'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일한다. 처리과의 규모와 조건이 달라서 역량을 진단하는 일도 어렵다. 통합 기록관 논의도 있지만 국가기록원의 지원 계획이 불명확하여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기록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기록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지만 이는 일부 기록관의 특별한 사례이다, 아직은. 기록관은 기록의 증거성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다. 처리과에서 기록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기록관으로 누락없이 이관되는지, 아카이브로 온전하게 보내는지, 가 기록관의 단순하고 명쾌한 사명이다. 기록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할은 근사해보이지만 모두가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특수한 사례가 수범 또는 전형이 되기에 한국 공공기록관리의 현실은 허약하다. '기반행정'으로서 묵묵히 티나지 않는 일을 기록관은 감당해야 한다.

기록관이 아카이브 역할을 하려면 먼저 기록관의 업무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재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1인 기록관이 1인 아카이브로 이름만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전환이든 대전환이든 준비해야 한다.

국가기록관리 대전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발표는 의미가 있다. 다만 현실과 다소 거리가 먼 추상적인 논의와 선언은 토론될 필요가 있다. 2022년에 우리는 새로운 중앙정부의 대표와 새로운 지방정부의 대표를 뽑는다. 중앙과 지방의 새로운 정부는 기록관리를 어떻게 볼까. 국가기록관리의 방향에 대해 성찰하고 과감한 전망을 제시할 좋은 기회이다.

건강한 후속 토론을 기대한다.

*손동유와 이영남의 발표에 대해서도 다른 분들의 적극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