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인 칼럼'의 5월 지정주제는 '기록과 정치'입니다.
'정치'의 문제가 넘쳐나는 시기입니다. '기록'과 '기록관리'가 정치 문제의 중심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기록·기록관리·기록전문가는 정치와 어떤 관계인지, 나에게 또는 우리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인지, 기록인 칼럼과 함께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기록관리 잘 하려면 정치도?

코즈모넛

 
우리 현실을 생각할 때 기록관리에 정치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사실 공공기록법 시행 때나 참여정부의 기록 혁신 때나 정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그건 아닌데 하는 대목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부탁에 부탁을 하는 일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없지 않다. 법령 제·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정부의 기록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해 청와대에 의견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작은 원칙 하나는 있었다. 그냥 부탁하지는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이랄까?

본디 정치란 여러 의견들을 조화롭게 조정하여 합의를 끌어내는 것을 뜻한다. 기록관리에 대해 알려고 조차 않는 정치인에게 일방적으로 기록 문제를 국회에서 언급해달라 부탁하는 식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부탁이 아니라 대화하고 설득하고 서로의 지식과 지혜를 교환하여 기록 관리의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합의에 이르게 해야 한다. 그런 합의를 토대로 할 때 비로소 일이 오래가고 내용도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는 정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과장님과의 정치, 민원인과의 정치, 기록 전문가간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기록관리라는 주제를 놓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또 함께 할 일들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미움이 싹터 뒤에서 욕이나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다. 무조건 포기하고 싸우지 않는 것은 더더욱 정치가 아니다. 길게 보고 기록관리에 관한 의견들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일, 그것을 토대로 하나씩 기록관리의 성취를 거두어내는 일이 바로 정치이다.

최근 아주 좋은 ‘정치 경험’을 하였다. 서울시가 시민 소통을 위해 본격적으로 기록관리를 하려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만큼 정말이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서울시 역시 다른 공공영역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사정들이 얽혀 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관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고 기록관리 체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일에 전문가, 시민과 함께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사결정자들과의 몇 번의 만남에서 말 그대로 정치가 이뤄지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의견을 조율하여 시민을 위한 기록 사업을 펼치는데 합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일이 진행되겠지만 일의 진행과정에서도 좋은 정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우리 쪽에 문제가 없지 않다는 현실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인생을 걸만큼 의지를 지닌 기록 전문가를 찾아내는데 애를 먹고 있다. 물론 몇몇 교수들과 운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실무를 도와줄 젊은 기록 전문가가 나서지를 않고 있다. 취업 준비나 현업과 같은 일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록관리의 미래를 위해 개인의 당면 과제를 뒤로 미룰 만한 희생과 투자가 있어야 관계 공무원들, 그리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함께 가자고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버림으로써 궁극에서는 자신을 찾는 지혜와 용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타협과 조정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기록 전문가들에게 그런 용기 있는 정치가 요구되고 있다.

정치를 대상화하였을 때는 비평하고 투정만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치를 생각한다면 원칙은 지키되 조정하고 타협하는 참여의 미덕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려운 정치는 내 안의 정치이다. 나와 타인, 조직, 사회의 조정과 타협은 결국 나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타자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록 전문가들에게는 지금 세상 정치, 기록 정치, 내 안의 정치 그 모두가 요구되고 있다.



Posted by anarch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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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혜경 2012.05.15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선생님 글을 읽으니 요즘 저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머리속을 "띵"하고 울려주는 느낌이네요.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반성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