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아키비스트의 눈] 기록으로 시작해 기록으로 끝내다 - 이명박정부 ‘기록 소동’의 폐해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3. 16:55

기록으로 시작해 기록으로 끝내다
- 이명박정부 ‘기록 소동’의 폐해 -



깃발
 
이명박 정부는 지난 노무현정부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록에 대해 각별한 것 같다. 지난 정부가 공공기록 관리체계를 바꿔보려 했다면, 지금 정부에서는 전 정부 기록을 이용해 요란한 소동을 일으켰다. 이 정치적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 ‘기록을 많이 남기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조롱같기도 한 경종이 느껴지기도 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은 건수 기준으로 이전 대통령의 기록 모두를 합친 것의 20배를 웃돈다. '기록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어 한 노 대통령은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의 많은 기록들은 역으로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을 향한 비수로 돌아왔다. 퇴임 후 불과 15개월 동안 '기록대통령'이 겪은 고초와 끝내 죽음이라는 선택은 바로 이 기록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명박정부는 업무에 쓸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전 정부 비난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른바 참고용 '인계자료'가 '계획에 의해' 청와대에 남겨졌고, 이 자료의 원본을 포함한 기록은 전량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었다. 청와대 같은 최고 권부에서 만들어진 기록은 온전히 남기 어렵기 마련인데, 이 오래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무현대통령은 법 제정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기록법」의 핵심은 기록을 충실하게 남기는 대신, 당해 대통령에게 15년간 공개로부터 강력하게 보호해야 할 기록을 지정할 권한과 퇴임 후 기록 활용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기록대통령'은 법의 취지에 따라 기록을 충실히 남기는 한편 퇴임 후 기록 활용 계획도 세웠던 것 같다.

대통령기록법의 취지라면, 그리고 이명박대통령이 당선과 함께 천명한 ‘전직 존중’의 문화에서라면 이 기록활용계획은 존중되었어야 했다. 우리는 그 실례를 우리 같은 대통령중심제인 미국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의 전직대통령 퇴임 후 활동에서 기록 활용은 불가결한 부분이다. 대통령은 기록을 충실히 남기고 정부는 민간과 협력하여 전직 대통령의 기록활용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대통령기록관 제도이다. 이를 통해 한때 최고 공직자였던 사람의 경험은 국민 모두와 국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현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사건을 계기로 고 노무현대통령 총리실에서 만 여권 가량의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자면, 노무현정부는 총리기록 또한 많이 남긴 것 같다. 하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는 시점에서 전 정부 기록은 또 다시 정치공격에 악용되었다. 정부 도처에 ‘역시 기록이 없어야 안심’이라는 그릇된 사고가 조장되면서 ‘무기록 행정’이 만연될까 우려된다. 또 법의 취지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으로 현 대통령 자신의 기록부터 온전히 남을 것인가라는 회의도 지울 수 없다.

이제 국가기록원에 대해 말해보자. 국가기록원은 고 노무현대통령의 정부혁신을 통해 조직 발전의 기회와 혜택을 얻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기록 소동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350인을 육박하는 정규직과 천억 넘게 들었다는 웅장한 최신 설비가 기록원이 속한 행정안전부라는 관료조직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국가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국가 아카이브’로서의 위상과는 관련이 별로 없으며, 정치적 중립 및 자립도가 기록원의 존재가치를 가늠케 하는 지표라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록원이 이명박 대통령 재임중 보여준 정치적 행위와 무행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지금 기록원이 그러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태인지도 문제다. 그래서 다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국가기록원에서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