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아키비스트의 눈] 한국만 대통령기록을 봉인한다고?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2020. 5. 11. 14:24

회원이 만들어가는 칼럼 '아키비스트의 눈' 입니다.

'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0-02)은 기록인님께서 보내주신 [한국만 대통령기록을 봉인한다고?] 입니다. 강효백 교수의 아주경제 칼럼 ‘세월호 7시간 비밀, 단숨에 합법적으로 푸는 비결' 관련하여 기록관리 제도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하며 대통령기록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록관리전문가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을 당부하는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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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 한국만 대통령기록을 봉인한다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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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0-02)

 

 

한국만 대통령기록을 봉인한다고?

 

기록인

 

 

 지난 428일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아주경제 칼럼(강효백의 경세유표27 ‘세월호 7시간 비밀, 단숨에 합법적으로 푸는 비결', https://www.ajunews.com/view/20200427151403686 )을 통해 송기호 변호사가 진행 중인 세월호 관련 지정기록물 공개 소송을 언급하며, 21대 국회가 3분의2 찬성의결로 지정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이 세월호 비밀을 단숨에 합법적으로 푸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글(진정으로 대통령기록을 지키는 길)에서 국회나 검찰이 지정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은 지정기록물제도의 취지에 반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이 주장의 부당함을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강효백 교수는 헌법개정안 의결과 똑같은 정족수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슈퍼악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몸부림치고 있다, ‘국회의원 20명 찬성으로 봉인을 출 수 있게끔 대통령기록법을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몇몇 국가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호주 등 세계 각국의 대통령(총리)기록법은 정보 공개와 공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비해, 한국의 대통령기록법만 그와 정반대로 비밀 봉인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각국의 기록관리 제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오해에 기반해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제도에 대해 오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대통령기록관리는 그 어떤 분야보다 더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강효백 교수의 칼럼과 같은 잘못된 주장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인 대통령기록관리 발전은 더는 기대하기 힘들다.

 

 모든 법률이 그렇겠지만, 기록관리제도를 담고 있는 관련 법률은 그 국가의 정치, 행정적 특성 등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통령기록관리법령은 국가의 정치제도나 발전상황,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 등을 담고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나라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나라의 제도는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민주주의가 정착한 국가의 제도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제도는 같을 수 없다. 강효백 교수가 슈퍼 악법이라고 주장한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제4항의 지정기록물 열람요건도 기록물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농후한 한국의 정치환경을 고려한 조항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제도를 한국의 제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록물관리는 그저 제도로만 이루어지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지 행정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에 비해 강효백 교수가 거론한 소위 기록관리 선진국들은 기록관리를 문화영역의 하나로 이해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각국의 기록관리 제도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럼에도 강효백 교수가 제시한 국가들의 사례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 제도가 다른 나라와 달리 그저 봉인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편견을 방지하고, 그 국가가 제도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지 파악해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 발전에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프랑스의 경우, 강효백 교수는 대통령기록을 전직 대통령, 정부 각료 등이 자신이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을 무제한으로 열람 및 활용할 수 있으며, 대통령기록을 주기적으로 총서 형태로 발간함으로써 프랑스 시민들의 자유로운 공개 활용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잘못된 설명이라기보다 마치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국정 최고 결정 과정을 즉시 공개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프랑스는 강력한 보호조치를 수행하고 있다. 1974년 지스카르 데스탕 대통령은 기록관리국장인 장 파비에와의 협력으로 기록물 양도협정서 관련 법을 제정했다. 이는 대통령 및 수상을 포함한 정부 각료들이 국정통치기록물의 이관을 보장하고, 기록물 생산자들의 기록물 보호 지정과 사후 이용을 보장하는 법이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속에 프랑스의 대통령 기록은 이관된 지 50년이 되지 않은 경우의 열람은 대통령기록물과 관련한 대통령 당사자와 대통령이 지정한 대리인의 허가 하에 열람하는 등 강력히 보호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뿐만 아니라 국정통치기록물에 해당하는 수상과 장관기록물의 경우에도 절차에 따라 50년 이전에 공개되지 않는 협정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 대통령기록의 활용을 위한 총서 제작도 퇴임 후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 20년 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프랑스의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보호 기간 이전의 공개는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나 대리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나 이슈 생산을 위한 대통령기록물의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문제 등을 이유로 기록물이 유실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지정기록물제도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은 자신들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 기록관리제도를 발전시켜왔다. 그들은 과거 나치 범죄를 위해 기록관리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대전 후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기록관리의 역할에 대해 반성했다. 이 과정에서 기록관리가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과 기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 , 공공기록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민주주의 핵심요소라는 전 국민적 컨센서스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어떤 통치자, 정치인이라고 할지라도 기록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나치 시대 총통의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리나 대통령의 기록관리적인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국정 최고 통치기록은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영구보존기록은 30년 정도까지 보호되고 있으며 60년까지도 연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수상실 등의 기록관리를 정파와 관계없는 전문 행정직 공무원이 독립하여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업무 수행에 개입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납득되지 않는다. 국가기록원 및 대통령기록관의 독립적 업무수행이 보장되지 않고, 기록의 정치적 악용 사례가 빈번한 한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영국은 공개될 경우 국방이나 국제관계, 국가의 질서유지,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공개되면 국가의 안녕과 대외정책 수행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기록물은 일반적으로 40년 동안 공개가 면제되고 있다. 보안이나 개인정보, 비밀정보와 관련된 기록물의 경우 완전 면제(Absolute exemption) 대상이며, 정부의 정책 수립 정보, 국가 안전보장 등과 관련된 기록물의 경우 조건부 면제(Qualified exemption)로 관리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기록보존소는 차관급 기구로 완전한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록관리전문가가 정치적 영향력과 관계없이 보호해야 할 기록을 철저히 보호하고, 공개 가능한 기록은 공개할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제도와 가장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지정기록물 제도도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도입한 것이다. 강효백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미국은 지정기록을 최대 12년까지 열람 제한하고 있다. 이 기록물은 접근 및 열람이 제한되며, 정보자유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또한 집권 초기 1년의 기록물은 최대 20년까지 공개를 제한하여,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의 기록물은 더욱 강력한 보호조치를 행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강효백 교수의 주장처럼 한국의 15~30년 공개제한 조항이 과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정기록보호는 한국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바로 1978년 미국 대통령기록물법에서 지정기록물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어 발현된 이래 단 한 차례도 열람 및 공개가 시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8년 한국의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된 이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진 국회의 지정기록물 열람은 바로 그 해 쌀 직불금 관련 논란으로 열람이 이루어졌다. 검찰에 의한 열람은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미국과 한국의 지정기록 보호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다. 미국의 경우 앞서 언급한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기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강효백 교수도 언급한 개별대통령기록관 및 독립적인 대통령기록관리 기구의 존재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토대라고 볼 수 있다. 지정기록을 정치적 영향력에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미국 국가기록청장은 영구직으로 재직하며, 하원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오랜 시간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은 정치적 영향력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제도로 발현된 것이다. 또 개별대통령기록관은 해당 전직 대통령과 협의를 통해 국립기록관리청장이 임명하는데, 대부분 기록관리전문가가 임명되고 있다. 대통령기록과 관련해 수차례 정치적 논란이 있었고, 개별대통령기록관 설립마저도 정치적 논란으로 실패한 한국과 너무나 다른 대통령기록관리 환경인 것이다.

 

 몇몇 국가의 국정최고기록 관리 현황을 살펴보았다. 한국과 유사한 지정기록 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도 있고, 공공기록의 한 형태로 기록을 관리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국가라도 민감한 중요기록에 대한 보호장치를 철저히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개되지 않아야 할 시기에 기록이 공개됨으로 인해 일어날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장기적인 관점의 기록관리 부실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록관리기관과 기록관리전문가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각 국가의 국정최고기록 관리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은 제도적으로 강력한 보호장치를 도입했음에도 세계 각국이 갖고 있는 기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독립적인 대통령기록관리기구도 부재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그저 지정기록 열람제도만 완화하자는 것은 병의 원인도, 그로 인한 현상도 치료하지 못하는 오진일 뿐이다.

 

 강효백 교수의 주장 중,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에 의한 열람과 고등법원장의 영장에 의한 열람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주장은 귀 기울일 만 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검찰은 그간 영장을 근거로 수차례 지정기록을 열람한 바 있으며, 이러한 행태는 대통령기록의 온전한 생산 및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앞서 수차례 언급한 대로 대통령기록을 지키는 일을 그저 법령 개정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는다는 정치권의 암묵적인 합의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다. 이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록관리전문가들은 대통령기록의 저변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잘못된 주장이 국민들의 판단을 오도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반박해야 한다. 국가기록원 및 대통령기록관은 지정기록의 보호를 포함한 대통령기록의 전문적인 관리가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또 하나의 토대인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록관리기관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글에서 언급한 각국의 사례는 주로 아래의 자료를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노명환, 조민지, 이정연, “국정통치기록의 이관에 관한 국제비교 미국, 독일, 프랑스의 비교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48, 2013.

김다영,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 비교를 통한 기록관리개선안 연구”,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2014.

대통령기록의 효율적 관리방안 모색”, [대통령기록관 설립 1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집],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