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의 눈] 현대판 사관, 기록연구직의 절실한 필요성 – ‘내란의 밤’과 기록부재의 교훈

2025. 5. 27. 12:02소통 및 협력/아키비스트의 눈

회원이 만들어가는 칼럼 '아키비스트의 눈' 입니다.

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5-02)은 윤혜경님께서 보내주신 [ 현대판 사관, 기록연구직의 절실한 필요성 – ‘내란의 밤’과 기록부재의 교훈 ]입니다. '역사를 위한 기록연구직의 역할'에 관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 본 칼럼은 한국기록전문가협회의 공식의견과 무관함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 '아키비스트의 눈'은 기록관리와 관련된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투고를 원하시는 회원님들께서는 karma@archivists.or.kr로 메일 주시거나 아래 바로가기(구글 DOCS)를 이용하셔서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실명이 아닌 필명(예명)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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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 현대판 사관, 기록연구직의 절실한 필요성-&lsquo;내란의 밤&rsquo;과 기록부재의 교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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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5-02)

현대판 사관, 기록연구직의 절실한 필요성 – ‘내란의 밤’과 기록부재의 교훈

(부제: 헌법과 기록관리법, 그리고 조선의 사관이 던지는 기록의 현재와 미래)

 2025.5.20.

윤혜경(국가인권위원회)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른바 ‘내란의 밤’—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했지만, 그날 국무회의의 회의록은 작성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국정 최고 책임기구가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와 정부의 책임성, 투명성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은 국정을 감시하고 통제할 권리를 갖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 바로 기록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역시 공공기록물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투명한 행정 운영의 토대가 되어야 함을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적·법률적 의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록이 누락되거나 의도적으로 작성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0여 년 전 IMF 사태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당시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으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대비할 기회를 잃는다.

기록연구직은 이러한 위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전문직이다. 2004년, 최초로 중앙부처에 기록연구직이 배치된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문서 따위나 만지는데 연구사가 왜 필요해?"라는 인식은 여전히 조직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현재도 다수 기관에서 기록연구직은 1인 체제에 불과하며, 기록관리 업무 외에 다른 행정업무를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선시대의 사관은 왕 앞에서도 꿋꿋하게 붓을 들었다. 그들은 후대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 현대의 기록연구직은 바로 이 시대의 사관이다. 단지 문서를 정리하는 직종이 아닌, '무엇을 역사로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 주체다.

기록은 처벌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바로잡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근거다. 기록이 있어야만 ‘꼬리 자르기’ 문화가 사라지고, 책임이 적절히 분배되며, 억울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연구직은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정부와 각 기관은 이제라도 기록연구직의 역할을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닌,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전문가로 인정하고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진실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