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4. 11:40ㆍ논평
[기록관리단체협의회 5차 성명서]
해외 입양 기록은 살아 있는 우리 역사이다
- 당사자와 전문가,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입양 기록관 필요-
작년과 올해 초 뉴스타파와 MBC PD수첩은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추진한 해외입양 기록물 디지털 DB사업의 문제점을 심층 보도했다. 기사는 아동권리보장원이 디지털 입양 기록에 대한 데이터 무결성 검증을 진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사용할 수 없는 DB가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많은 예산과 노력, 인원이 투입되었지만 전문성 없이 일을 추진하면서 활용 불가능한 결과물을 얻게 되었다는 게 두 언론사의 공통된 비판이었다. 작년 개최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이와 관련된 국회의원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올해 아동권리보장원은 두 번째 사업으로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를 마련하였다. 열흘 전 아동권리보장원은 이틀에 걸쳐 현장 설명회를 개최해 언론과 입양인 당사자, 관련 단체, 연구자들에게 공개했다. 입양 기록관 설립이 늦어지면서 법에 따라 민간입양기관의 기록물을 이관 받아 보존해야 하는 아동권리보장원이 급하게 임시 기록물 수장고를 준비해 공개한 것이다.
그런데 입양인 당사자(단체)나 관련 연구자들을 배제한 채 아동권리보장원 내부 인력만으로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 준비 사업을 주도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전국의 민간입양기관으로부터 입수한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확인하고 검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입수된 기록물을 전산화하지 못한 채 아직도 수작업으로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 문제는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가 설치된 장소와 관련된다. 현재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는 쿠팡 물류창고 옆에 조성된 냉동창고이다. 그런데 이곳의 화재 진압 방식은 국가기록원 표준에서 추천하는 가스 소화 시스템이 아니라 물을 이용한 스프링클러이다. 오래되고 낡은 종이 기록물이 대부분인 입양 기록물이 화재 발생 시 불과 물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동시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제기되었다. 그 외에도 준비실이나 작업실, 탈산 장비 등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현장 설명회에 참석한 건축사는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가 단순히 기록물 보관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이관, 정리, 분류, 매체변환 등 기록관 고유업무를 수행하는 업무시설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전에 대지 용도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변경 절차를 수행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지금 입양 기록물 임시 수장고가 위치한 대지가 지구단위계획상 창고 등 몇 가지 용도로만 허가가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업무시설인 기록물 수장고는 설치할 수 없고, 차후에 용도변경을 신청하더라도 허가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건축법상 용도 문제를 간과할 경우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록관 같은 역사문화시설을 준비하는 과정은 업무를 추진하는 기관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와 기록관 관련 전문가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 주체의 참여만이 기록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기록관을 역사의 무덤 같은 수장시설이 아닌 시민친화적이고 대중적인 기억기관으로 준비할 수 있다. 실제로 첫 번째 사업이었던 해외입양 기록물 디지털 DB사업이 실패한 이유도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추진한 두 번째 사업도 동일한 이유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입양 기록원 준비 사업이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한다.
1. 입양인 당사자들의 경험과 의견이 입양 기록관 설립 과정에서 중요한 초석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 형태로 의미를 남긴다. 하나는 종이나 사진 같은 사물에 기록을 남기는 방식으로 이것은 공식적인 활동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아동권리보장원이 추진해 온 두 개의 사업은 모두 이러한 기록물을 디지털과 아날로그 형태로 남기고 보존하며 공개하기 위한 일들이었다. 역사적 사건의 또 다른 의미는 사람들의 몸에 남아 있다. 역사적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당사자들의 경험 기억에는 기록물에 남기지 못한 내용과 오랜 시간에 밀려 사라져 버린 진실까지 담겨 있다. 역사적 당사자는 역사를 증명하는 살아 있는 기록 그 자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로 입양인은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로서 입양 기록관 설립 과정에 중요한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2. 아동권리보장원 내부와 외부에 기록관 설립 관련 전문가 그룹을 구축해야 한다.
기록관은 단순한 보존 시설이 아니라 전문적 역사기관이다. 기록관에서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활용하고 재현하는 모든 활동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는 학문적 실천이다. 그런데 현재 입양기록에 대한 전문적 관리 체계 부재가 입양인에게는 기록물 훼손으로 인한 정체성 상실이라는 두려움을, 기록연구사에게는 업무 수행의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수많은 입양기록을 체계적으로 통합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이 중대한 과제를 적절히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아동권리보장원에 기록연구자와 학예연구자 같은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입양 기록관 설립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둘째, 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외부 전문가가 함께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해 상시 자문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3. 입양 기록관은 시민을 위한 대중적 역사문화기관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이제 기록관은 단순한 기록 보존소를 넘어 대중적 역사문화기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을 모아 공적 자금을 들여 영원히 보존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공공적 실천이 되었다. 역사적 사건이 지니고 있는 공공적 가치가 시민들 사이에서 공공 기억으로 확산되는 것만큼 공익적인 일은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입양 기록과 그 역사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입양 기록관을 대중적 기념·기록관(memorial archive)으로 확장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는 다양한 역사로 채워져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의 역사에서부터 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뿐만 아니라 촛불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4.16세월호참사 같은 슬픈 역사 모두 우리의 과거이다. 우리가 과거를 잊는다고 해서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어두운 과거나 밝은 역사 모두 우리가 연구하고 재현하며 기억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입양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어둡고 불편한 역사를 더욱 정성들여 기록하고 연구하며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과거를 망각할 때 불행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온 역사의 가르침이다. 입양 기록관을 당사자와 연구자, 시민이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입양 기록관은 대중적 역사문화기관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2025년 8월 4일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한국기록전문가협회
문화융복합아카이빙연구소
한국 기록과 정보·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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