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4. 17:14ㆍ논평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성명서]
국가인권위 기록연구관 진정 사태,
더 이상 ‘1인 기록관 체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 인권위는 내부 노동권 침해를 사과하고,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1인 기록관 체제’를 즉각 혁신하라 ―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21년 동안 사실상 혼자 기록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기록연구관이 과도한 업무와 소수 직렬에 대한 차별을 호소하며 소속 기관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의 직원이 자신의 노동권과 건강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속 기관에 진정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록연구관은 2005년 임용 이후 기록물 이관·평가, 공개 재분류, 기록관리 교육 등 광범위한 업무를 혼자 감당해 왔다. 암 수술과 우울증, 허리디스크로 입원한 상황에서도 기관평가 대응을 위해 출근해야 했지만, 업무 공백을 대신할 인력이나 보호 조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인권위가 기록관리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사유로 ‘담당자의 질병으로 인한 업무 공백 및 이로 인한 평가 대응 부족’을 지적받았음에도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인권위의 인권기록 관리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낸 것이며 인권의 보편적 보호에 대한 의지 조차 의심케 한다.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이번 사안을 개인의 고충이나 특정 기관의 인사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는 공공기록관리 현장에 고착된 ‘1인 기록관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1. ‘최소 1명 배치’는 적정 인력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현행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은 기록물관리기관에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공공기관은 ‘최소 1명’이라는 법적 기준을 사실상의 표준정원처럼 운영해 왔다. 그 결과 전문요원 한 명이 기관 전체의 기록 생산 통제, 이관, 평가·폐기, 공개 재분류, 시스템 운영, 교육과 기관평가 대응까지 떠맡고 있다. 휴가나 질병, 출산·육아휴직, 인사이동이 발생하면 업무가 중단되는 구조를 정상적인 기록관이라고 할 수 없다. 최소 배치기준은 법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최저선일 뿐, 지속 가능한 기록관 운영의 기준이 아니다.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하는 1인 기록관 체제는 즉시 개선되어야 한다.
2. 기록관리의 책임은 기관과 기관장에게 있다
적정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업무대행 체계를 마련할 책임은 기관과 기관장에게 있다. 기록관리 평가는 담당자 개인의 희생과 초과노동을 측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담당자의 질병으로 업무 공백이 발생했다면 기관은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한시 대체 인력, 추가 인력, 기록관리 환경 개선 등 해소 방안을 조치했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기록관리 평가체계를 개편하여 전문요원 개인의 업무수행 여부가 아니라 기관의 인력·예산 확보, 업무대행 체계, 전담조직 설치와 기관장의 책임을 핵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3. 전문성은 적정한 노동환경에서 발휘된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전문성은 자격을 갖춘 사람 한 명을 채용한다고 자동으로 발휘되지 않는다. 전문성을 실현하려면 업무량에 상응하는 복수의 전문인력과 실무지원 인력, 전담조직과 예산, 독립적인 업무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휴가와 질병, 교육과 인사이동에도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업무대행과 인수인계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적정한 노동시간과 건강권, 교육과 경력개발 기회의 보장은 전문직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공공기록관리의 지속성과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4. 인권기록을 지키는 것은 인권위의 핵심 책무다
인권위의 기록에는 인권침해를 호소한 시민의 목소리와 조사 과정, 위원회의 판단, 국가의 대응이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니라 침해당한 사람의 권리를 증명하고 국가기관의 책임을 확인하게 하는 ‘인권의 역사’이자 ‘민주주의의 자산’이다. 인력 부족으로 중요 회의와 의사결정 기록이 제대로 생산·관리되지 않는다면 인권위의 책임성과 독립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라면 자신의 기록과 그 기록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권리부터 보호해야 한다.
우리의 요구
하나, 행정안전부와 국가기록원은 기관 규모, 기록물 생산·보유량, 업무 난이도와 기록의 중요성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기록관리 인력 산정기준을 마련하고, ‘1인 기록관’ 관행을 전면 개선하라.
하나, 국가기록원은 기록관리 평가체계를 개편하여 전문요원 개인이 아니라 기관장의 책임, 적정 인력과 예산, 전담조직 및 업무 연속성 확보 여부를 중심으로 평가하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기록관리 인력과 업무량, 업무대행 체계 및 근무환경을 즉시 조사하고 근본적인 개선계획을 공개하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기록관리 전문인력을 조속히 증원하고, 독립적인 전담조직과 안정적인 업무대행 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모든 공공기관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직무 독립성, 적정한 노동시간, 건강권과 휴식권, 교육 및 경력개발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라.
아울러 이번 진정을 이유로 진정인에게 어떠한 조직적 불이익이나 2차 가해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인권위는 진정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한 조사와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공공기록관리의 부실은 담당자 개인의 성실성 부족이 아니라, 전문인력을 고립시키고 최소한의 인력과 자원조차 제공하지 않은 조직과 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은 단순한 법정 의무 인력이나 기관평가 대응 인력이 아니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지키고 국민의 권리와 사회적 기억을 보호하는 전문직이다.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1인 기록관 체제의 개선과 기록관리 환경의 구조적 혁신에 즉각 나서야 한다.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기록전문가의 노동권과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며, 기록전문가와 연대할 것이다.
2026년 7월 14일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록관리단체협의회 논평] 진화위는 기록관리 부실 실태를 점검하고, 기록관리 전문인력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0) | 2026.06.29 |
|---|---|
|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성명서]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기록관리과' 설치에 나서야 한다 (0) | 2026.04.22 |
| [논평 2026-02]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 법제처 심사의뢰안은, 부분 수용에 그치고 핵심은 후퇴했다 (0) | 2026.02.22 |
| [성명서]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기록관리과’ 설치를 강력히 촉구한다 (1) | 2026.02.19 |
| [논평 2026-01] 최초의 민간 기록전문가 출신 국회기록원장 임명을 환영하며,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 산실인 '의회 아카이브'로의 도약을 기대한다 (1) | 2026.01.29 |